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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육로보다 수로를 더욱 이용한 이유
이다해  2018-08-23 05:02:20, 조회 : 613, 추천 : 139

<h3><span class="np_18px_span">조선이 육로보다 수로를 더욱 이용한 이유</span>                                </h1></h3>

<span class="np_18px_span"></span>                                </h1>



1b5f7f77d1319bb2518aeaf67260daf8d287f6cce8be1bb38e0b8ea09e47015dd00513c57277c462a37ceaa4b99d93ed9a7747e551629ff0fb8de8a31ff487a608f007abe37c2ca6c4fb6f8a77e17bfd.jpg 조선이 육로보다 수로를 더욱 이용한 이유<br id="pi__3077600206" class="pi__3077600206" /><span "font-size:14px;">(짤은 그저 넣어보는 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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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태종실록 2권, 태종 1년 8월 2일 무오 1번째기사 </span><span style="font-size:14px;">1401년           </span>

<span "font-size:14px;">남쪽 지방의 조세는 육지 운송 대신에 모두 배로 운반하도록 하다</span>

<br />

<span "font-size:14px;">남계(南界)의 부세(賦稅)를 모두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수운</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水運</span><span style="font-size:14px;">)하라고 명령하였다. 검교 한성 윤(檢校漢城尹) </span><span title="朴惇之" class="view_info_wrap tooltip2" style="font-size:14px;">박돈지(朴惇之)</span><span style="font-size:14px;">가 상소하기를,</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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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공부(貢賦)의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수운</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輸運</span><span style="font-size:14px;">)은 삼한(三韓) 이래로 모두 해도(海道)로 하여, 남방 백성들이 배[舟揖]에 익어서 폐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span><u><span style="font-size:14px;">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왜구</span><span style="font-size:14px;">의 난(亂)이 있을 때부터 육지로 운반하는 방책을 정하였는데, 사람과 짐승이 지고 싣는 데에 지치어 길에서 죽는 것이 매우 많으니, 그 폐단이 심히 컸습니다</span></u><span style="font-size:14px;">. 개국한 이후에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왜구</span><span style="font-size:14px;">가 조금 잠잠하여 다시 해로로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수운</span><span style="font-size:14px;">하게 하였는데, 공부가 들어오는 것이 배나 되었습니다. 기묘년 가을에 여러 번 풍파를 만나 인명이 많이 상하였으므로 불편하다고 의논하는 사람이 있어, </span><u><span style="font-size:14px;">남계의 공부를 다시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육로</span><span style="font-size:14px;">로 운반하게 하였는데, 두어 해가 못되어 그 폐단이 수로로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수운</span><span style="font-size:14px;">하는 것보다 많습니다</span></u><span style="font-size:14px;">. 엎드려 바라옵건대, 다시 수로로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수운</span><span style="font-size:14px;">[漕轉]하는 의논을 거행하게 하소서."</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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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하였다. 의정부에 내리니, 삼부(三府)가 함께 의논하여 상소하기를,</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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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span><u><span style="font-size:14px;">수로로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수운</span><span style="font-size:14px;">[漕運]하는 것은 고금을 통하여 이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span></u><span style="font-size:14px;">. 진언(陳言)한 바가 실로 마땅합니다. 하물며, 금년의 공부(貢賦)는 쌀로 수납하니, 육지로 운반하는 것이 더욱 미편합니다.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경상도</span><span style="font-size:14px;"> 상도(上道)의 주현(州縣)의 전부터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육로</span><span style="font-size:14px;">로 운반하던 것 외에는 모두 바다로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수운</span><span style="font-size:14px;">하게 하고, 그 배는 각각 그 관(官)에서 만들게 하며, 사공(沙工)과 격인(格人)은 해로에 익숙한 사람을 소모(召募)하여, 사선(私船)의 예(例)에 의하여 세가(稅價)를 주어 실어 보내게 하고, 각도의 병선(兵船)으로 호송하게 하소서."</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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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하여, 유윤(兪允)하였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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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편리함과 수송량 : 수로 >>>>>>>>>>>>>>>>>>> 육로</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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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그래서 수로는 조선의 주 수송이 된다. 하지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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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jpg 조선이 육로보다 수로를 더욱 이용한 이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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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5월 5일 신사 1번째기사 </span><span style="font-size:14px;">1403년</span>

<span "font-size:14px;">경상도의 조운선 34척이 바다에 침몰되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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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임금이 말하기를,</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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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쌀은 비록 많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지마는, 사람 죽은 것이 대단히 불쌍하다. 그 부모와 처자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조운(漕運)하는 고통이 이와 같으니, 선군(船軍)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도망해 흩어지는 것은 마땅하다."</span>

<br />

<span "font-size:14px;">하였다. 우대언(右代言) </span><span title="李膺" class="view_info_wrap tooltip2" style="font-size:14px;">이응(李膺)</span><span style="font-size:14px;">이 말하기를,</span>

<br />

<span "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육로</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陸路</span><span style="font-size:14px;">)로 운반하면 어려움이 더 심합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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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하니, 임금이 말하였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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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span><u><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육로</span><span style="font-size:14px;">로 운반하는 것의 어려움은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우마</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牛馬</span><span style="font-size:14px;">)의 수고뿐이니,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span></u><span style="font-size:14px;">?"</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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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조운선들이 침몰하다보니 결국 다시 육로로 바꾼다. 당연히 신하들은 육로가 더 힘듭니다 라면서 수로를 사용하자고 하지만 태종은 사람이 먼저라면서 육로를 고집한다. 하지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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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11월 3일 갑신 2번째기사 </span><span style="font-size:14px;">1412년                </span>

<span "font-size:14px;">우군 동지총제 홍유룡이 건의로 양곡운반을 육로 대신 수로로 하기로 하다</span>

<span "font-size:14px;"> </span><span style="font-size:14px;"> </span>

<span style="font-size:14px;">   </span>

<span "font-size:14px;"> </span><span style="font-size:14px;"> </span>

<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font-size:14px;">조운</span><span style="font-size:14px;">법(</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漕運</span><span style="font-size:14px;">法)을 의논하였다.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span><span title="洪有龍" class="idx_wrap idx_person tooltip2" style="font-size:14px;">홍유룡(洪有龍)</span><span style="font-size:14px;">이 상서(上書)하였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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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조운</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漕運</span><span style="font-size:14px;">)은 국가의 큰일[大務]이고, 토지가 기름지고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조세</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租稅</span><span style="font-size:14px;">)가 많음은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전라도</span><span style="font-size:14px;">만한 곳이 없습니다. 요즈음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조운</span><span style="font-size:14px;">을 폐(廢)하고 육수(陸輸)의 법을 세웠으나, 신의 생각으로는 배를 만들어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조운</span><span style="font-size:14px;">함은 어려운 듯하면서도 실지로는 쉽고, 전체(傳遞)하여 육수(陸輸)함은 쉬운 듯하면서도 실지로는 어려운 것입니다. 신이 일찍이 전라 수군절제(全羅水軍節制)의 직임에 비원(備員)되었으니, 각 포구(浦口)의 요해처(要害處)와 풍수(風水)의 험순(險順)한 연유를 다 알고 있는데, 요해지로 정박할 만한 곳은 수십처(數十處)에 불과하고, 나누어 정박하여 수어(守禦)할 배[船]가 많은 데는 10여 척[艘], 적은 데는 7, 8척이면 넉넉하니, 만약 60척을 더 만들어 지난번에 만든 40척과 합하면 1백 척이 됩니다. 또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전라도</span><span style="font-size:14px;">의 1년간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조세</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租稅</span><span style="font-size:14px;">) 숫자는 대체로 7만 석(石)이오나, 4, 5월의 바람이 순한 때를 맞아 하번 선군(下番船軍)에게 역사를 시키되, 1척마다 5백여 석을 싣게 한다면 5만여 석을 수송할 수 있고, 그 나머지 2만여 석은 사선(私船)에 나누어 실어 모두 운반한다면, 예전의 전함(戰艦)은 그대로 수어하게 하여도 지금 만든 배로써 조전(漕轉)할 수 있어 일거 양득(一擧兩得)이 될 것입니다. </span><u><span style="font-size:14px;">만약 육수하면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조세</span><span style="font-size:14px;">는 많고 우마(牛馬)가 적은데다 험난한 곳을 발섭(跋涉)하게 되어 실로 이루기 어려우며, 그 소가 꺼꾸러지고 말이 쓰러져 가면서 제휴(提携)하고 전수(轉輸)하는 괴로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다가 불우(不虞)의 변이 있게 되면, 사람이 고단하고 말이 약해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span></u><span style="font-size:14px;">? 그러므로, 신이 이르기를 ‘육로(陸路)로 수송하면 단번에 백폐(百弊)가 생긴다.’ 하였습니다. 또 배를 만드는 공(功)을 육로로 수송하는 노고에 비한다면 어찌 백배(百倍)에 그치겠습니까?"</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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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수로의 수송량은 육로 따위는 상대가 되지않고, 육로보다 더욱 빠른속도로 이동시킬수있는 이점이 있는데 그거 포기 하십니까? 라면서 상소들이 올라오면서 전라도의 미곡은 다시 수운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한다. 다만 경상도는 여전히 육로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한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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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뭐 조선에서는 수로 VS 육로 떡밥으로 계속해서 논쟁이 터지는데 실제로 육로는 많이 사용하지만 조선의 주 운송은 수로이다. 이에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되는데 다음 같은 이유들이 나온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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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png 조선이 육로보다 수로를 더욱 이용한 이유

<br /><br /><span "font-size:14px;">"신 등이 이를 헤아려 보건대, 4월 11일에 부묘(祔廟)한 후에,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제릉(齊陵)</span><span style="font-size:14px;">을 배알(拜謁)하고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개성(開城)</span><span style="font-size:14px;">에 거둥한다면 꼭 농사철에 당할 것이니 옳지 못할 듯합니다. 접대에 필요한 물품은 비록 모두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수로</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水路</span><span style="font-size:14px;">)로 운반하여 민폐(民弊)를 없앤다고 하지마는, 그러나 </span><u><span style="font-size:14px;">부득이해서 육로(陸路)로 수송하는 곳에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농우</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農牛</span><span style="font-size:14px;">)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찌 그 폐해가 없겠습니까? 또 시위(侍衛)하는 인마(人馬)가 적더라도 수천(數千)이하는 아닐 것인데, 이때를 당하여 민간의 곡초(穀草)가 이미 모자라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span></u><span style="font-size:14px;">. 청컨대, 9월을 기다려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개성</span><span style="font-size:14px;">에 거둥하여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제릉(齊陵)</span><span style="font-size:14px;">을 배알(拜謁)하고 성터[城基]를 정하고 이내 강무(講武)를 한다면 거의 다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 문종실록</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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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신하들 : 육로를 위해서 소을 사용할텐데 농사는 누가 함?</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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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jpg 조선이 육로보다 수로를 더욱 이용한 이유<b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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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title="鄭昌孫" class="idx_wrap idx_person tooltip2" "font-size:14px;">정창손(鄭昌孫)</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title="沈澮" class="idx_wrap idx_person tooltip2" style="font-size:14px;">심회(沈澮)</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title="尹士昕" class="idx_wrap idx_person tooltip2" style="font-size:14px;">윤사흔(尹士昕)</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title="洪應" class="idx_wrap idx_person tooltip2" style="font-size:14px;">홍응(洪應)</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title="尹壕" class="idx_wrap idx_person tooltip2" style="font-size:14px;">윤호(尹壕)</span><span style="font-size:14px;">는 의논하기를,</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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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지금 보건대 호조(戶曹)에서의 두 가지 의논이 육로로 운반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만, <u>사람과 말의 노력이 실로 어려워서 수로로 운반하는 쉬움만 같지 못합니다. 만약 볍씨가 바다 기운을 쐬일 것을 염려한다면 두껍게 싸서 실으면 될 것입니다</u>."</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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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하였으며 - 성종실록</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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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신하들 : 육로는 사람도 힘들고 짐승도 힘듭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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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가 더 편하다.jpg 조선이 육로보다 수로를 더욱 이용한 이유<br /><b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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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호조 판서 </span><span title="安瑭" class="idx_wrap idx_person tooltip2" style="font-size:14px;">안당</span><span style="font-size:14px;">이 아뢰기를</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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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평안도</span><span style="font-size:14px;">는 곡식 수량이 본래 넉넉하지 못한데 강가의 여러 고을이 더욱 부족하니, 수송하는 일이 곧 국가의 시급한 일입니다. </span><span title="李克均" class="idx_wrap idx_person tooltip2" style="font-size:14px;">이극균(李克均)</span><span style="font-size:14px;">이 경변사(警邊使)로 있을 때에 강가로 조운(漕運)하는 일을 다방면으로 강구하다가, 초마선[哨船]에 가득 싣고 강물을 따라 올라갔었으나, 초마선 배 바닥이 넓지 못해 마침내 가지 못했었습니다. 신이 대동 찰방(大同察訪)으로 있을 때에 본도(本道)의 노련한 사람들에게 자세히 들어보니, 모두들 ‘잉박선(芿朴船)에 싣고 </span><span class="idx_wrap idx_place" style="font-size:14px;">의주(義州)</span><span style="font-size:14px;">로 해서 차차 끌고 올라가는 것이 편리할 듯하다.’ 하였으니, 관찰사로 하여금 한두 척을 만들어 시험해 보도록 한다면 만세의 이익이 될 것입니다. </span><u><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육로</span><span style="font-size:14px;">(</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陸路</span><span style="font-size:14px;">)로는 큰 산과 긴 골짜기에 꼴을 나르고 곡식을 끌어가야 하는 노고를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강물로 </span><span class="search_keyword_bd idx_wrap" style="font-size:14px;">운반하면</span><span style="font-size:14px;"> 공력은 적게 들고 이득은 한이 없습니다</span></u><span style="font-size:14px;">." - 중종실록</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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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안당 : 육로보다 수로가 더 적은 인력이 들고, 운송량의 급이 다릅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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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이런저런 이유로 조선은 수로를 더 자주 사용함. 조선이 얼간이스러워서 수로를 쓴것이 아님. <span style="font-size:14px;">하다못해 한반도가 100% 평야에 고속도로가 깔려있어도 수운의 장점인 대용량과 장거리 수송은 무시못함.</span></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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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font-size:14px;">솔직히 철도의 등장 이전에 수로를 육로가 이긴다는게 말이 안 되기 하지. <span style="font-size:14px;">육로가 그렇게 좋다면 중국은 뭐가 좋다고 막대한 돈과 인력을 치출하면서 왜 대운하를 만듬?  </span></span>

<span "font-size:14px;"><br /></span>

<span "font-size:14px;">그나저나 도로를 만드는것은 적군이 쳐들어올수있는 길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수레의 활발한 운행이 기대할수없다는 근본 없는 이야기는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함. 실록을 뒤져봐도 그런 이야기는 없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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